임신: 내가 사산 후 58리터의 모유를 기부한 이유

  • 웬디 크루즈-찬
  • BBC 코리아
웬디 크루즈-찬

사진 출처, Wendy Cruz-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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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나와 남편 모두 너무 행복했다. 임신 16주 때,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딸 부자 집안에서 처음 나온 아들이라 꿈 같았다.

내 아들을 맞기 위한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임신 19주하고 3일째였다. 미국 독립기념일이 있는 주였는데, 몸살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임신 중에 흔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독립기념일 당일, 열이 계속 오르고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난 결국 응급실로 향했다.

진통이 왔다. 자궁 문이 2cm 열렸다. 염증으로 자궁이 많이 부어있었고 태반과 양수에 이미 염증이 생겨 태아까지 감염됐다.

아이를 살릴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방법이 있어야만 했다. 현대 의학 사회에서 아이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그 이후의 절차를 준비해야 했다. 장례식은 어떻게 할지, 화장할지, 아이를 묻을지... 이 모든 것을 임신 중에 결정해야 했다. 죽음을 앞둔 아이의 출산을 위해 진통을 겪어야 했다.

내 아이의 삶을 축하할 수 없었다. 난 그렇게 내 배 속의 아이의 죽음을 준비했다.

서류를 작성하던 남편이 "우리 아들 이름은 어떡할까?" 물었다.

"킬리안, 어때?"라고 그에게 말했다. 킬리안은 우리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이름이다.

크루즈-찬 부부와 킬리안

사진 출처, Wendy Cruz-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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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찬 부부와 킬리안

유도 분만 한 시간 만에 양수가 터졌다. 심한 진통 없이 아들이 나왔다. 어찌나 빨갛고 작던지. 아이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의 헛된 기대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고 속으로 "움직여봐, 제발 살아나"라고 부탁했다.

세상 처음 우는 사람처럼 울었다. 그리고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세상은 고요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는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이를 품에 안고 말했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모유가 새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내가 사는 뉴욕에 모유가 필요한 아이가 많다는 얘길 듣고 남편에게 모유를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남편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유가 필요한 엄마 6명을 찾았고, 난 그들을 위해 유축을 계속했다.

지금까지 약 58ℓ의 모유를 기증했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 모유를 기부한 웬디

사진 출처, Wendy Cruz-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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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들을 위해 모유를 기부한 웬디

건강상의 이유로 충분한 모유 수유가 어려운 엄마들이 있다. 한 아이는 수포성 표피 박리증이 있었는데 내 모유가 아이의 물집 치료와 소화 기능 촉진에 도움이 됐다고 들었다.

내 모유를 기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킬리안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나아가 내 모유를 먹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돼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젠 몸에 무리가 와서, 젖을 떼려고 시도 중이다. 내 안의 한 부분을 또 잃은 것 같다. 모유는 킬리안이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래도 먼저 보낸 아이를 기억하며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아이와의 기억이 사산으로 끝나지 않길 바랬다. 엄마로서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다.

지금 내 곁에 보살피고, 옷을 입히고,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는 아이는 없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을 위해 내 모유를 기부함으로써 우리 모두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